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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지식의 단층: 지식인의 흔한 착상으로서의......

by 마음대로다 2024. 4. 2.

지식의 단층: 지식인의 흔한 착상으로서의......

 

 

 

 

 

 

 

 

나는 성경과, 성경김, 임진왜란의 전문가로서, 우리나라가 나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내 누나처럼, 살아서 눈과 입이 닫히는 것을 목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고발문학은, 그것의 정신은, 분명 압구정의 비상도처럼, 도가도, 어쩌면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늦도록, 뒤늦도록, 기생수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은, 분명 나와 살짝 비슷한 지식인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의 박진감. 박진만. 그리고 박해민. 그리고 면발광. 조현병. 그런 것들은, 다른 한국 문학이나, 만화, 드라마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고단수 같고, 고단샤 같고, 그렇다. 아니면 미야모토 무사시. 오가사와라. 우리들의 이문열을 보면, 고작해야, 도깨비라는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다 마는 것처럼, 그렇게 섭외를 하려고 했다가, 그만 두었을 것처럼, 우리들의 천국은, 이청준은, 혹은 드라마의 홍학표는, 면발광의 관점에서 보면, 기생수에 많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기생충도 그렇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 모든 것들이, 기생수를 찬양하는 모임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르고, 눈 뜨고 모르고, 눈 뜬 장님처럼, 프랑스 칸 영화제, 그리고 송강호 하는 것이다.

 

나는 고발문학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나의 성격 급하고, 조금도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들, 문건들, 작품들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으나, 하나하나 음미하고, 커피를 이것저것 마시듯이, 모카 포트에도 마시듯이, 그렇다 보면, 상당한 수준에 있는 것이고, 드디어 기생수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기생수가, 나의 것과 같은 인식소를 갖고 있는 것처럼, 드디어 포착이 되는 것이다.

 

정치 권력은, 문학적 실재에 걸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나의 따뜻한 기독교 문학에 이르지 못하고, 회전하다 보니, 기생수와 연대해 있는 거란의 진영에서는, 기생수에 잡아 먹히는 그들 아군들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것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인들을 초청해서, 기생수 축제를 벌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간화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뒤늦게 놀라게 되는 듯 하다. 사람들은, 독일 대마초에 취해서, 그런 생각은 일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고고학이다. 그것은 따라할 만 하고, 어느 유명한 시간 강사가, 시간을 가로지르는 소녀처럼, 그 말을 관객들에게 따라하게 할 만하다. 문제는?

 

고고학이다.....

 

지식의 고고학. 누군가 선점한 제목이기 때문에, 나는 지식의 단층, 그 흔한 착상을 지금 붙이게 되었다.

 

*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하면, 예술이나 학문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의 위아래 상호 필요충분조건이 늘 기생수의 충격적인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영원히 지식의 철학적 반열에 이르지 못할 것을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대단히, 철학적 유행이 있었을 때가 있었다.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았고, 나의 글은 철학적 단단함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나를 철학자로 인정한 사람은, 오직 나 뿐이었으나, 드디어 사람들의 실감이나, 경험 속에서, 철학적 레플렉션이 다분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조금만 규격을 정하고, 숫자를 정하면, 금세 철학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대학교 앞에서, 서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오직 교보문고의 미담 사례만 남겨두고, 마치 추한 것처럼, 추문이 가득한 것처럼, 서점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철학적 관심이 뿔처럼, 그것이 교차하는 힘으로다가, 적어도 하나쯤은 문학과 철학책을 팔았던 서점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것이고, 여배우들이 그와 같은 성적인 터널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정말 우리나라의 방송이 실험실의 대표적인 공간인 것처럼, 공갈젓꼭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와 붙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외국 사상가들이 있을 수 없어서, 노태우나 보통, 그런 것도 없지 않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국문학생이, 공부하다가, 창작에도 자기 재능이 발견되어서, 힘을 쓰다 보면, 갑자기 기생수의 칼날 같은 모노가따리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힘을 쓴다 해도, 수유리에서, 마장동에서, 은평구에서, 북한산에서, 김포에서, 그런 창작의 기술직에 머문다는 것은, 일종의 일본 선언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기생수를 극찬하는 것은, 사실 작품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전반적인, 콤프레샤 같은 것들 모두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얼마나 프레야, 그리고 일룸, 가평 프레야, 셀 수 없는 기생수들이 많은가? 달란트는 탤런트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도, 그렇게 생각이 한 번 밀리고, 평생을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미기는 정말 국문학 같다.

 

미키 마우스 같다.....

 

 

*

 

 

 

한번 한중일 삼국이, 서양의 지옥 세력과 붙어서 승리한 적이 있는데, 해전이라는 것이 그래서, 육전이 아닌 것은, 남중국해로 접근한 서양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풍악을 울렸고, 꽹가리 치고, 그랬더니 늘 그렇게 관념의 계단과 같은 희생과, 제의, 그런 것에 골몰하던 지옥 신학자들은, 생경한 풍악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신학 같은, 멀쩡한 자기들 군사들을 거열형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그런 것이 일절 없는 내용으로다가, 순수하게 무기대 무기로 붙었으나, 그때도 지옥은 이기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운으로 이겼으나, 나중에는 우리도 준비를 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도 운으로 이길 확률도 있고, 나중도 운을 시험하다가, 마침내 지옥의 세력에게 질 확률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한국에는 있기에, 처음에는 운으로 이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것이 만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은 매혹을 당했었다.

 

 

일제가 한국을 자주 침략하는 것은

 

기생수 같은 만화가 재밌고,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것은 사실이고,

 

차이가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잠깐 보고, 그와 같은 만년 전의 세계대전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잊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마땅한 여흥이 없고, 문학이 없으며, 철학적 소질이나 야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직까지 재밌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어린 국문학생들이, 다만 문창과 학생이 아니고서, 기생수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몇백 년 묵은 구미호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

 

 

과거에 이순신 장군이었던 것 같은 나는

그닥 철학적이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기생수의 표현의 힘을 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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