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바흐와 재미없는 세상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나는 별로 그런 삶을 살지 못했지만, 풍족한, 그런 삶, 등대지기, 국문학생이 기름 부음을 받아, 글을 조금 쓰는 것으로, 서울의 표면적 부요함에서,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고 치자. 그는 여기서 조금 일하고, 저기서 조금 일하고, 부모의 돈을 받았다가, 때로는 받지 않았다가, 서울의 어느 쪽방에서 쪽방 체험도 하고, 자주자주,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일 년 살고, 이 년 살고, 삼 년 살고, 그렇게 한 사십 대 초반이 되었다고 치자. 글을 완전히 못 쓰지도 않고, 명성이 아주 없지도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서울에 많은 것 같다 말하지만, 공장에서 로봇들이, 로봇들을 찍어내듯이 써내는 글들을 제외하고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의외로, 국회의 국회 의원 숫자보다 적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라고 하기에는, 또한 그보다는 이 나라에 열 명의 선한 사람은 분명 있는 것이다. 아무튼, 처음에 다시 오피스텔에 재진입했을 때, 전세 삼억짜리, 삼촌이 주식 투자에 성공해서, 이억을 그에게 보태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쓰나미 같은 감격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세상을 보는, 의무감 같은 것. 의무감 안감 같은 것. 부르조아 같은 것. 까마로 같은 것.....
모래시계의 모래가 점점 빠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독일 베를린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벌린. 우리가 야마하 관측 장비로 하늘을 보다 보면, 블랙홀을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분명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것이다. 우리가 오키나와에 일본인 여자친구와 놀러 가면, 한 사람이 미야자키, 그렇게 소리치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옆에서 여자친구가, 하야오 외치지 않는가?
옛날에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마음이 진정 꽉차 있었다. 그 옛날에 계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것의 다섯가지 색상에, 내가 있는 것 같고, 그것을 내가 입은 것 같고, 그랬던 것이다. 문제는 부르조아 재산이 아니라, 그것의 지식이었다. 영화의 그와 같은 존재의 우위를, 일종의 한국 어떤 시처럼, 존재의 이유, 문제 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래시계의, 김종학, 모래가 거짐 다 빠진 다음에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사람들에게 임윤찬의 바흐만 남은 것은, 거기에서만 힘이 빠지지 않는 것 같은 것은, 김규리의 늑대전과 약간 일맥 상통하는 것이 있다. 가보고자 하나, 너무 멀고, 늑대를 보려고 거기까지 가나 싶은 것이다. 내가 서울에 갔던 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문학과 학생이 얼마나 오피스텔에 가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영혼을 파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시는, 도시정벌은, 우리를 그렇게 끊임없이 꼬드겼다. 어딘가에서, 임수정이나 송소희 같은 이를 만날 것 같은, 그런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 녹색지대, 위대한 유산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오피스텔에서 한 한 달을 지내고 나면, 근처의 맛집이나 많이 알고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김종학, 박찬호, 조익표, 그런 모래시계가 다 빠질 때까지, 우리는 그와 같은 종말의 시기에 달할 것이로고는,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바흐는 바흐고, 신현균은 신현균이다 생각하였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글을 쓰다가 포기하고, 절필하고, 유명과 무명 사이에서, 무명에서도 사라지는 이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진정, 대통령 중심제 같다. 우리가 옛날 시골 집 같은 데에서, 파리 끈끈이를 보다 보면, 영화 곡성처럼, 시라소니치게 놀라게 되는데, 우리는 진정, 모든 나무와, 시골집과, 면장과, 전원주택, 강원도 원주, 그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인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우리들 옛날 사극을 좋아한다는 것도 중요한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교육부 사무관의 자기 아들 왕의 디엔에이가 그것의, 신경림의 마지막 사자후 같은 것이지 않았나 싶다. 자기 아들은 농무의 어떤 후계자라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비교의 자때를 갖다 대니까, 아프고, 우리가 중학생인 것처럼, 선생에게 아프고, 아픔이 아를르의 여인처럼 살아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긴기라, 기미는 맨 처음부터 있었다. 쉬리에서도 그렇고, 접속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창평 엿을 좋아하고, 대인시장의 사라다빵을 좋아하고, 안에서 돼지고기를 보지 않고, 계림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좋아해서 그렇다고 여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혜린의 테마에 빠지지 않고, 다만 혜린을 좋아하고, 전혜린도 좋아하는 것 같은, 그런 살인적인 진행 안에서, 멜로디가 느껴지고, 그러다보니까, 그것의 한화 최진행, 내가 바흐를 좋아하고, 그래서 바흐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영혼과 광주의 영혼이 만나는 것처럼, 자기의 영혼을 갖고 감지하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의 세월이 지난 것인가? 대통령 중심제는, 국회의원 선거는, 도대체 인간의 마지막 구멍이 어디인가 싶게, 얼마나 시골 장터의 부침이 심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는가? 그것은 진정 퓨전 오브 호라이즌인 것이다.
우리가 옛날처럼 영화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본다.
김규리의 늑대들처럼, 국문학생들과 오피스텔처럼, 그것은 아무런 향방이 없는 것이다.
훈련......
마음은 영혼이나
나오는 말은
엠비엔이나
티비조선 같은......
지상파는
춤추는.....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