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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기독교는 시작인가? 결말인가? 혹은 절망인가?

by 마음대로다 2025. 11. 23.

기독교는 시작인가? 결말인가? 혹은 절망인가?

 

 

 
 
 
 
 
 

 

 

 

 

 

나의 교회는 영광의 언덕에 있고, 다도해의 섬에 있고,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있다. 한국은 맞다. 그러나 한국인이 올 수 없다. 무인도를 팔 때, 겨우 유튜버들이 온다. 그것은 옵저버. 혼자 옵저버서예. 그런 것. 그리고 티비의 숱한 말 잘하는 목사들을 지나치다가, 어느 알지 못하는, 도시의 개척 교회에, 대단한 목사님들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와 같은 기대의 지층에 있다. 그러니 고질라처럼, 일본에, 자주 출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없는 것이다. 업데이트. 우리가 없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업데이트라고 하듯이. 그것은 예쁜 여자가, 인도에서, 유트브를 찍는 것과 같이, 왠지 걱정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 같은, 그와 같은 지층과도 흡사하다. 채점은 매길 수 없다. 금발의 메기. 다만 무한한, 흡사한, 그런 것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그런 불만이 없다면, 안국사, 우리의 지금을 상정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숱한 영화에 대한 불만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제네시스. 메리크리스마스. 용의자 엑스의 헌신.

 

교회에서 나와, 자기 교회에서 나와, 남의 교회 근처의 분식집에서, 학원 가는 중에, 뭘 맛있게 먹는 것도, 존재의 현상학적 측면에서 어지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적으로 배신하나, 도리어 그것은 교우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배신하지 않으면, 어떻게 세상과 만날 수 있겠는가? 그 맨 처음은 그래서 각별하고, 그것에 대한 탐구는 많이 있는 것 같아도, 실상은, 실상사, 많이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한 명도 없다고 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런 말을 누군가 남겼는지 모른다. 몬테쏘리 같은 것. 쏘리 씸쓰투세이 아일러뷰 같은 것. 교회를 마치고, 일요일날 학원 수업이 있었는지, 아니면 혼자 가볍게 영화를 보러가는 길이었는지, 미술품 거리 근처의 분식집에서 음식을 먹었었다. 먼저는 친구와 갔었고, 그때는 나만 혼자 갔었다. 학생인 것. 남자인 것. 성적이 좋은, 반에서 이십일사단 같은, 일등이나 이등 같은 것. 십이십이 사태 같은 것. 그리고 기독교의 불만자 같은, 불심이 아주 깊은 것 같은 영화애호가 같은 것. 그 모든 것들을 모아 놓으면, 아무리 착하고, 범생이 같고, 해태 타이거즈 범생이 같고, 얌생이 같아도, 갑자기 혼자서 음식을 노려보고, 맛있게, 아기자기하게 먹고, 감사히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고 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회색 빛이, 그것마저 찬란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회색의 유학이었다. 서울대학교는 사도 바울이고, 옥스퍼드는 암소의 장 같은.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그 시절에 보지 못한 것은, 서울대학교가 그림자이고, 옥스퍼드가 암소의 장이라는 것을, 꿀벌의 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그렇게 보이지 않고, 그것을 알면, 찬란한 회색의 유학으로 볼 수 있겠는가?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옆에 있는 친구를 두들겨 패는, 그런 보편적인 형태이지만, 또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기형적인, 기형도적인 만족인 것이다. 거기에, 일본의 뿌려 먹는 음식 재료가 덧붙여지는데, 다만 지나가기만 했던 숱한 분식집에서, 친구가 맛있다고 먼저 인도를 했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색은 지나가는 회색이 있고, 현실 참여적인 회색이 있는데, 전자에서 후자로 내가 바뀐 것도, 친구가 맛있다고, 거기서 보자고 해서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에도 가고, 대학생 때도 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맛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음식점들도 매우 분발해서인지, 독특함이, 귀중함이, 선별적인 착함 같은 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가격이 좋았고, 그중에 가장 푸짐한 것을, 친구도 없이 먹었던 것이 기억나고 그렇다. 나는 거대한 중국에서, 여행하고 있었고, 걷고 있었고, 사람들이 거북선을 하나 만든 것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영화 평론 없이,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집에 갔을 것이다.

 

남자 분식집 요리사는 없어서, 가끔 있대도, 거기서 나는 크리스탈을 만났을 수 있다. 아니면 샹들리에......

 

박정현도 불렀던

 

그만큼, 오블리비온, 가사를 붙이면서 부르는 노래를 배경으로 말하면, 비평은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는, 영화를 보다 보면, 개척교회를 보다 보면, 성룡의 폴리스 원투쓰리, 기독교가 있으니, 우리가 좀더 성령에의 갈급함을 갖고 영화를 본다 했었다. 그것은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며, 장점을 가장한 단점이기도 하고, 다시금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지점으로, 재떨이에 피가 묻는 미장센으로 강등되기도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귀도 크고, 입도 크고, 눈도 크고, 키도 크고, 심장도 아주 크고 그렇다. 그것이 저장되지 않으면, 작아지고, 때로는 더 작아지고 그렇다. 불교인이기 때문에, 아주 성적인,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자연심이 드는 것이다. 기독교인 학생들의 철학 능력이 아무래도 우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진화론에서도 그러하다. 그것의 현명한 눈이, 우리는 도시의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순신 장군도, 처음에는 창조론을 주장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늘 애매한 일본군들을 상대하다가, 자기의 전투능력이 진화론마저 갖게 된 것을 발견한 것일 수 있다.

 

*

 

 

성경에는 노아의 거북선도 있고, 아시아에서 당했던 환란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토했던 곳으로, 수구초심, 돌아눕는다.

 

그렇다면 일본군들보다 못한 자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신없는 자들이다......

 

 

영화도 교회이고

 

소설도 교회이며

 

비평문도 교회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예술 전쟁에서 이기고 싶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독교인들도

 

이상한 못난 소설을 쓰다가

 

도시를 걷다가

 

분식집에서 뭘 가볍게 먹고

 

회색빛 속으로

 

건국대학교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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