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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나의 서울 (축. 성탄)

by 마음대로다 2025. 12. 24.

나의 서울 (축. 성탄)

 

 

 

 

 

 

 

 

 

누군가의 노래에, 나서에 가면 편지를 보내줘요. 그런 대목이 있다. 나의 서울을 줄여서 그렇게 말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엘에이로 알고 있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정답이 두 개나, 혹은, 문제가 잘못된 것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은 칼잡이들이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잔인한 에스에프잡이들이다. 전자는 수긍을 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나, 그것이 그렇게 옷가게, 카페, 그리고 식당을 나오면서, 고집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마이클 잭슨을 사랑하고, 마이클 잭슨도 우리를, 이상하게 한국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고 주다스 프리스트, 내가 주다스 프리스트와 블랙독을 좋아하다가, 신학대학을 갔던, 그런 고해성사를 말하면, 세상이 물에 잠기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상한 추상 공간, 북한의 한국 가요 무대 같은, 극단 모순적인 것을 상상할 때, 누군가 마지막으로, 나성에 가면, 나주 국밥에 가면, 나의 서울, 나서에 가면, 편지를 보내줘요 노래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잡 증후군의 사람들 같다. 나는 실로, 편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맛있는 삼겹살 비빔밥을 시켜놓고, 크라켄 음악을 배경으로, 나서의 편지를 쓰는 것이다. 나는 문인들을, 그들의 집단을, 분서의, 갱유의 멈춤 시간을, 그렇게 나쁘게 여기지 않고, 그들도 우리의 소중한 볼트와 너트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각도에 따라서는, 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크라켄처럼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고, 애국가를 사절까지 부른다 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크라켄의 격정적인 지하철 환승역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철학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것의 선행적 경험이, 학습이, 가장 먼저 김일성 종합대학교에서, 신현균의 가상적인 자유주의 신학대학으로 주소를 옮긴 중국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의 천장지구 같은 질주, 추일 같은 질주, 그리고 다른 숱한 영화들을 기억하듯이, 그것들이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지금의 중국을 구성하였는지 모른다. 중국 사람들은, 사람들이 곤충처럼 죽어가는 곳에 유학 다녀온다. 그러면 뇌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다.

 

나만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의 극한.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음악가도, 사상가도, 소설가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 있지만, 이제는 점차로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일, 한스 짐머가 나온 것이라고 하면, 우리는 크라켄 놀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제시 잭슨이 나온 것일 것이다. 잭슨 형제자매가 나온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선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제이. 스치는 바람에. 스치는 일본어로 흙을 말하고, 스치는 바람이라는 것은, 바람에 흙이 섞여 있다는, 그런 만주 벌판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방금 밥을 먹었다. 이것이 햄버거와 같은 별미인지, 아니면 밥버거와 같은, 그것을 지나, 한 끼 식사인지 아리송하다. 별미는 돈이 많이 드나, 한 끼 식사는 도리어 가정집에서 더욱 밝을 때가 있다. 참기름을 두르고, 맛있는 삼겹살은 따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양이 작지 않아서, 다시 삼겹살집으로 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많이 먹으나, 나는 뭘 먹고 와서도, 그냥 배고픈 친구들을 위해, 적당히, 그러나 햄버거 패티 분량 이상을 먹을 때가, 전대 후문 식당가에는 있지 않은가? 요즘에는, 상무지구가 그렇게, 식당 술집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는 붓으로, 그림 같은 큰 글씨를 쓰면서, 난중일기, 나중에 무엇이 될까 서로 조용히 점을 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명도 나처럼,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느와르나, 르누아르 그림 같은, 그런 화려한 거리의 풍경이었다. 오히려, 육감적이고, 젊은, 그런 여자가 서빙을 보고 있으면, 도리어 둘이서 오순절의 다락방처럼 말이 트일 것 같은 환상이 있었다.

 

결국 공대나, 치대, 약대나, 공대, 그런 데를 갈 것 같았다.

 

다 내 친구이나, 이것들은 대체, 크라켄, 무엇인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다, 충효동 집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조대 고시원에도, 전대에도, 구형 호넷 육백을 놓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흥분을 정리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대우 맵시나가, 실은 이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선덕여왕 신종의 비천상을 거기다 그려 넣고 있었다.

 

만일 서울에, 지금, 한스 짐머가 산다면, 한국 사람 얼굴로, 한국말을 하면서, 가끔 서양 영화의 주문을 받아 작곡을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너도나도, 성시경도 할 것 없이, 발라드보다도, 장중한, 그런 영화의 브금을 제작하고자 하고, 그것이 큰 유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스 밴드가 나오고, 한스 짐머가 나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홍콩 영화가 있고, 시그널이 거의 스토리 전부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그런 희한한 보고가 있었다. 시그널이 얼마나, 쪽대본으로, 나의 글쓰기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던, 음악 같은 내용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 유혹에 생각이, 후발의 세대는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생각은 그처럼, 잡종의 곤충과 같다. 한국 남자 중에, 제법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있으나, 그들이 그와 같은 음색과 말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성공담이나, 성공 시대 같은 것은 확보된 것 같지 않다. 이번 남자 배우의 소녀시대범 같은, 이슈는, 우리들의 잘잘못을 파고드는, 디아블로 4급의 실제계가 아닌가 한다. 어떠한 독일 가곡의 문건 같은 형이상학적 철학 교재의 발간도 없이, 한국이 순전히 나의 생각의 바닥과 천장이나 갖고, 김용옥의 말처럼, 붕어빵을 찍어냈던 것이다. 사팔팔오. 사팔팔육. 황해. 주황해. 연녹색.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아파트 건축 혁명을 살면서, 그와 같은 공진을 느꼈다. 한스 짐머도, 우리도 모르게, 한스 밴드와 나란하게 여기는 우를 범했을 것이다.

 

누군가 내가 공부하는, 가난한 고시원 앞에, 구형 호넷육백을 가져다 놓는, 김대성과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하였을까?

 

그것의 에피퍼니가 없진 않았으나, 다들 스토아학파처럼, 강단철학자나, 견유학파, 그런 느낌들이 많았다. 나처럼 나가르주나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곳에서, 들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들면서, 도리어 체력 증진에 자극을 주는구나, 웃고, 클러치 케이블만 망가져도, 그것으로서, 장성에서부터, 유동까지, 이동하는 극한의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늘 언제나 천사처럼, 내용을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고, 얼마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었다. 클러치 케이블이 뭔지도 몰랐다.

 

이제는 철학자나, 교수들도, 형장의 이슬람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외면자였고, 나중에는, 지금에는, 지구 크라켄의 한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브금이 그렇다. 영화는 보지도 않았다. 어떤 기구한 여인의 삶이 그러한 것이다. 영화의 브금인 것이다. 깔리는. 옆에 있는. 흥분을 돋우는. 때로는 영화를 앞서가는. 그러다가, 브금만 모은 것들을, 교보문고 핫트랙 코너에서 고를 수가 있다. 서점 점원들이나, 정부청사 입구에서 차량 검문을 하는 경찰들이 와서, 영화를 보지 않고, 브금을 들을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카프카의 성과 같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순한 것이 있는지, 가방에서, 숨이 막혔던 때가 있으나, 세상 모든 박진영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들을 갖고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없을 수 있다. 여자들은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가방이 없는 행차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팔일오와 같다. 여자는 그와 같은 유관순도 있지만, 저마다의 이완용들도 있는 것이다. 이완용들이, 독립에 불필요한 지식들이지만, 학습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나처럼, 영화도 보지 않고, 한스 짐머 음악들을, 인셉션은 보고, 나이트 라이즈도 보고,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크라켄 음악이나, 아서왕 음악들이, 좋은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음악만 몇 번을 듣다가, 무슨 영화의 브금이었지 했더니, 해적 영화의 브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자는, 어떤 남자의 여자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는다. 사람들은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결혼한 줄을 모를 수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제아제바라아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화순의 탄광 마을처럼,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절대적인 정신의 마지막, 한국어적인 에세이에 도달하고 만다.

 
나는 멋진 음악 없이, 글을 쓰지 않는다. 무슨 세상에 조용히 할 말이 있는지, 그런 이상한 생각을 도리어 갖는다. 

 

아무튼 나는 그처럼, 숱한 도시의 출판적 크라켄들과, 적들에게 은밀히 포섭되어 있는 부여들, 공주들에게 침공받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

 

 

*

 

아름다운 어린 젊은 한국 여자 육상 선수들을 보면,

 

아무런 단어도, 문장도 없는, 그런 훌륭한 브금의 모습 같은 데가 있다.

 

 

 

삼단뛰기를 하면, 군대에서도 훈련을 뛴다 하는데, 관중들이 그에 맞게 박수를 쳐준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것은 음악적 불만족인 것이다.

 

문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