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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한국문학은 어떤 식으로 일본화되는가?

by 마음대로다 2026. 2. 12.

한국문학은 어떤 식으로 일본화되는가?

 

 

 

 

 

 

 

 

 

 

 

미국화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화가 재밌는데, 그래서 중국화가 재밌는 구석이 있다. 독일화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이다. 한국은, 국문학은, 두쫀쿠처럼, 두바이도 될 수 있다. 한화가 이글스, 호텔 캘리포니아, 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둘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일종의 독립 소나무 같은 인상을 준다. 언덕을 돌다 보면, 우리는 옛날부터, 마을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수 같은 독립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어밴돈드 파출소 건물을 사서, 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니라면 하는 수 없다. 아무튼, 우리는 어째서 부싯돌 같은 한국시들이,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사라지고, 늘 이상한 괴식 문화나 자랑하다가, 이런 것도 먹어봤다, 저런 것도 먹어봤다, 인간은 더러운 것이다, 그런 기층적인 주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선배들은, 운동권 시절까지 포함해서, 절개가 있어서, 그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추앙하기 위함일 수 있다. 그런 더러운 등고선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김소월은 어디 가고, 이육사는 어디 갔는가? 둘 다 일본군 장군 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김구도 그렇다. 일본군 장군 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인간의 변신의 능력이라는 것은, 고문의 확률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 말이, 아름답고, 의미 있다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국경선을 철통 경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도, 마침내 그들 문화가, 오비완케노비, 오비맥주먹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되는 운명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국경선의 확장은, 이벤트 호라이즌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포 영화는, 오재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갑자기 팽창해서, 정리되지 않고, 어떻게 정리할 수가 없다. 미국의 아름다운 다층식 목조 주택은 모두 버려지고, 어밴돈젼스, 다들 나와 같은 느낌의, 현균식의 미국 미장센들이 장악하고 있다. 뉴욕도 그렇고, 다들 그렇다. 만감이 교차하고, 정만식, 마음이 그렇다. 김정호. 가수 김정호도 그렇다. 마음이 곧 쿤밍 여행을 가는 나의 마음처럼, 선험적 고향상실성, 혹은 선험적 어떤 느낌성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국문학의 그런 기출문제적인 발상은, 우리에게 참다운 독립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것을 갑자원,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학생 두 명이 약간 죽을 것처럼 사랑하는, 선배가 된 다음에는, 다 이유가 있어서, 생명의 대상이 된 것일 텐데, 그것을 느끼지 않는 것도, 못하는 것도, 쉘부르의 우산의 슬픈 테마 공원 음악처럼, 올드보이의 미도의 테마처럼, 아무튼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이다. 텐뿌라. 뿌리가 없어서, 뇌가 마치 뇌수막염에 걸린 사람처럼, 일본화가 되는 것인데, 김억 같은 안경 끼고, 그러는 것인데, 바로 그때 우리는 일본과, 미국을, 눈에서 강력한 레이저 빔이 발사되는 것처럼, 직관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뭔가 한 국가로, 다시 이전하는 것이 문학가의 운명이라면, 베토벤, 혹은 쇼스타코비치, 그나마 이상한 뭔가가 없는, 자초지종이 분명한, 그런 인간이나, 문학, 국가, 그런 것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문학을 찾는데, 닭 한 마리나 내주고,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문학이나 영화를 찾는데, 그냥 멜로드라마나, 치즈떡볶이나 내주는 것은, 한국은 폴란드에 전투기를 수출하는데, 탱크도 수출하는데, 그들에게서는 닭이나 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정신적 손실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김소월은, 동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지만, 김억이나, 이육사, 김구 등은 일본으로 건너가, 황제가 되고, 최고 장교가 되고 그랬던 것이다.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도, 그와 같은 국경선 완전 봉쇄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깊은 신경숙의 슬픔을 준다. 그리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고, 코도 아프고, 반드시 우리 민족이 소망할 만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냥 무한하게, 우리들처럼, 불쌍할 뿐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마지막 영화감독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른 이들은, 언제든지, 일본화가 될 수 있는 수준의 문학에서, 늘 기출 문제들을 찾고, 아주 통 사정을 한다. 그래서 존레논이 한국 여배우 임예진을 좋아했다는 가설은, 그렇게 신빙성이 없지 만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용운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불복종하여서, 존레논을 죽였다는 가설도, 그렇게 못 미더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다 수준이 낮은 문학을 가진 국가의, 김구 식의 문화 강국의, 운명인 것이다.

 

 

한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그런 우리 옛날 마을에서의 독립 소나무적인 프로젝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 모든 물성이라는 것은

 

춘원 이광수의 단말마의 비명처럼

 
사람 이름 같은

 

춘심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한 사람, 누구 한 사람, 이 나라 이 땅에서, 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면, 갑자기 훌륭하게, 갑자기 연쇄살인의 매트릭스가, 황진이의 시조처럼,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 수호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