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티비문학관적인 수학여행
드라마는 두 컷으로, 크게 두 가지 줄거리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수학여행이 그런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학생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 같은 모습을, 티비는 잘 보여준다. 문제를 하나 선정하고, 학생들 앞에서 풀이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고, 드디어 그것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검은 흑판은, 역전앞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에다 우리가 뭔가를 썼을 때, 우리는 항상, 무로부터의 창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 중에는 김창조, 이창조라는 친구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묘하게, 타임을 믹스해서, 교복을 입고 있고, 명찰이 심지어는 한글에서, 한자로 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한자가 잘 모르는 것인 경우에, 선생이 돌다가, 이게 무슨 자냐고 물어보는, 아침 햇빛의 사선은,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우리나라 화가들과, 미술사들을, 그만 유한부인들의, 유호정 부인들의 치적으로 만들 것이다. 드라마가 그것들을 계속해서, 우리끼리의 주말의 영화, 명화 극장으로 만들면, 우리는 안도현의 한숨을 비로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숨은 옛날에, 차가 많이 없을 때, 앙드레 가뇽의 음악처럼, 흔한 것이었다. 뛰어가서 버스를 타고, 걷는 중에 비가 왔는데, 최선을 다해 집에 도착하고, 준비물을 늘 까먹다가, 친하긴 했지만, 찾아가기가 뭐 한 전 학년 반 친구에게 그것을 빌리고, 단관극장의 개봉영화의 마지막 날, 한 사람의 기호주의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 같은, 그와 같은 날에 영화를 보는 기쁨은, 지금의 일본 여행, 중국, 동남아 여행, 유럽 여행을 승가에 귀의하는 것처럼, 한없이 능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사람들이, 가정들이, 자차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이라고 하면, 공중에, 수많은, 지금의 어느 유명한 학원 강사처럼, 수학문제들을 타고 지나가는, 그런 육이오 전쟁 같은 숨 가쁜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귀성, 아니 귀경하였었다. 서울 사람들은, 단순한 흐름이지만, 지방 유학생들은, 귀경했다가, 귀성했다가, 귀경하게 되는, 그리고 방학 때에 다시 귀성하게 되는, 그런 양방향 흐름이 원활한 올림픽 대로 같았다. 수학여행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처럼 가정마다, 사람마다, 자차가 있는 경우가 그때는 없었다. 학교는 학교이나, 섬과 같이 되었고, 비가 때마침 온다고 하면, 교실이 배처럼 작아졌고, 그리고 하루 종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느슨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의 몸은 그런 것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리고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뭔가를 견학하고, 그것으로, 어떤 퀴즈를 내는, 점수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맞는, 그런 것이 없는 대동 세상이라는 것은, 딱히 대동고등학교나, 서강고등학교, 중앙여고가 아니어도, 우리는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하나씩, 저마다의 꾸러미에서 꺼내, 마치 하나의 시간 안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연출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남고의 숙소가, 여고의 숙소가 나란하게 있었다. 저녁 늦게 춤추고 놀다가, 우리는 그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이 마구마구 월담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마다 모두 자차가 있고, 차가 한 대도 있고, 두 대도 있고, 세 대가 있는 경우도 그렇게 드물지가 않다. 아버지 출근차, 어머니 장보는 차, 자식이 아직 출가하지 않는 경우, 드디어 신차나 중고차를 장만한 경우가, 지금 이 나라에, 은하수의 별처럼 흔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선생은 약간 옛날 타입으로, 주변에 그런 승용차가 많이 없던 때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스토리에서는, 지방에서 그 지역의 군수처럼, 혼자 지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학여행을 가지 않게 된다. 학교 단위로 여행을 가는 것을 그래도 높이 사는 사람이 있고, 개별적으로, 얼마든지 가는, 활동반경, 이동수단, 그런 것들이 있는 경우, 가치가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국 수학여행을 주도하고, 막 선생이 되어서, 학생들과, 그 옛날의 구봉서처럼, 정답게, 국내 여행을 다녀오던 스토리는 그것의 왕권을 내주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일본 여행도 후쿠오카 다녀오게 되고, 오사카, 또 다녀오게 되고, 유럽 여행도 다녀오는 애덤스미스 국부론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퀴즈를 하나 준다.
그렇다면, 교육의 중심은 누구에게 있는가? 귀향한, 아니, 귀촌한, 노총각 선생에게, 베트남 처녀라도 소개해주는 것이 좋은가? 그런 것이 과연 교육의, 그를 따라온 중심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중심이, 우리나라 교육 행정, 그리고 실질 경제에, 그런 것들에게, 지금 정림사지 삼층석탑처럼 세워져 있는 것인가?
교육의 중심이 없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볼 때, 좀비의 창궐을 의미한다. 숱한 필름적인 현상학, 그 이전의 서양 미술사는, 한 폭의 그림 바깥의, 여백의 미학적 좀비처럼, 그것들의 가능성을 늘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의 기아 자동차, 키아로스큐로는, 이미 그림 안에까지, 어느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침입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혼자 사는, 라오스 처녀라도 소개해주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관심의 대상은, 교육의 중심이 아니다.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이런 글을 쓰고, 이순신 장군마저, 방탄 갑옷의 시험에서, 죽는, 그런 사람으로 만든다고 해도, 그와 같은 창조경제적인 발상이, 우리나라의 교육적 중심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선라이즈 선셋, 아직도 아이들은, 아직기, 어떤 사람 이름처럼, 공부를 하다가, 그날 벽에 손을 대고는, 최선을 다하고,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아직도 우리들이 그 옛날 먹었던, 깻잎이나, 콩자반, 그리고 갈치 같은 것을 먹고는, 학교에 갈 것이다. 다만 그 수가 많이 없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든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세 가지를 아침으로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차가 있는 주부인 경우에, 남아서, 멸치 들어간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야무지게 더 먹을 수도 있다. 그만큼 한식의 세계화는, 다만 미래적인 비전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어떤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러브스토리의 테마 음악 같다.
한국 문학은 일본화되어 사라지고 지금은 없다.
대신에 일본이 옛날처럼 한국을 무서워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다. 기브엔 테이크. 말 그대로, 아픔 없이 얻는 것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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