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교양의 사탄적 차이
지식은 사탄이거나, 교양이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다. 둘이 차이가 있는데, 사탄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식으로 산다. 그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엠티를 가고, 삼수를 해서 신입생이 되었어도, 엠티를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골고다의 언덕에 올랐는데, 재밌는, 어떤 수학여행 같은, 패키지 여행 같은, 외국인들도 함께 올랐는데, 갑자기 십자가 거행식이 야외 예배당처럼 늘 새롭게 거행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사람의 피. 그리고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우리는 지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양도 아닌, 그런 답보 상태에 있다 하겠다. 금전문답리인가, 교전문답리인가, 아무튼 그런 괜찮은 문답리 고사성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수많은 생각나지 않는 사람 중에 내가 한 명 된다는 것은,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 것은 제법 일본이나, 중국을 흔드는, 코리아, 중국이 코리아를 먹지 않은 이유가 고작해야 그런 것이라는, 항상 적당한 악마 손의 유튜브적 주장을 보자면, 그 말은 일면, 그 정도의 조명으로는 맞는 것이다. 중국이 어떤 내용을 갖고, 우리와, 북한의 김정은, 김책공과대학, 한국의 포항공대, 일본의 사가사키상등을, 적어도 부분만을 가지고서, 흔들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써서, 암암리에, 암표처럼,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명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들만 지금 동아시아 삼국에 진 쳐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아주 기계적인 명필들만 갑자기 양산이 되어서, 양산리,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잘 쓴 것인지 아닌지, 그런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인간이 잘쓴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잘된 것인지, 쁘레따뽀르떼, 혹은 뽀또, 잘 알지 못한다. 과전불납리. 그렇게만 말해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얼굴만, 표현하여도, 우리가 기쁜 것은, 그것이 철학이 되지 못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성리학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한명회를 보자. 한명회가 성리학일 수도 있고, 문종이 성리학일 수 있다. 누군가 섹스, 사랑에 관한 학문을, 아름다운 교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생각의 파편은, 다만 우리의 마음에 파문만을 일으키고, 사라지고 만다.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제발 좀 말을 해달라고 말하는데, 영어로 플리즈, 김미 유어 마우즈, 그렇게 인상적으로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대화는 중요하고, 평가는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생쥐를 어떻게 알았는지? 하면서, 꺼내 쥐를 주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마우드즈, 마우즈가 먼저 있고, 부리타니아가 나중에 있었을 수 있다. 지식은, 유플러스의 유독, 독일어로 비쎈샤프트, 그것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그것이 저절로 돌아가는, 그런 첨단 기술의 샤프래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 입에서 쥐를 발사하는데, 사람들이 기가 막히게, 캐츠, 그러는 것도 재밌는 야구적인 상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쎈샤프트로 기록할 수가 있다. 지식은, 그런 것들과 상관이 없다. 우리들의 지식은, 적어도 삼수를 했어도, 엠티까지 다녀오고, 대학을 일년 반 정도 다니게 되면, 그것의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학업일치. 바로 그것으로써 취직까지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불쌍하다. 왜냐하면, 아름답기 때문이다. 서울은 온통, 그런 일지망, 이지망, 삼지망의 아름다운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에서는 교양에 잠기게 된다. 그것의 열정, 그리고 숱한 기억들, 그런 것들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습격이 있을 수 있고, 여자들의 허벅지의 습격이 있을 수 있다. 없을 수도 있다. 단지 지방을 그 수준에서만 가늠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런 것은, 서울에서도, 회기에서도, 당산에서도, 너무나 흔한 것이고, 도리어 그런 것이 지방이면, 지방러, 아무튼 서울이 지방 중의 지방, 꽃지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은, 채널이, 지방과 지식이 혼재하면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교양이 없는 목사가 제일 사도 바울의 서울 같다. 그중에 수괴가 내 생각에는 옥한음과 조용필이었을 것이다. 조용기.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만 말해도, 숱한 영화들이 나를 제하고, 자기들끼리만 맴돌아도, 얼마든지 사람들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신학 공부를 하다가, 도대체, 다른 것들을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이 나를 위해, 지금 그림을 더욱 표현적으로 그리자면, 그렇게 준비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모든 것들이, 지식과 교양의 사탄적 차이를 나타내는, 서울대 전철역, 예전에 있던 술집 이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였을 뿐이었는 것이다. 그것은 사늘하고, 비수가 날아와, 어떻게 꽂힌다는 영화적인 표현처럼, 사람들은 겨우 지식 삼지망의 삶 속에서, 신채호의 말처럼, 아와 비아의 투쟁 같은, 피아노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잘 들으면, 서울말 같기도 하다. 그리고 불륜을 고발하는 드라마나 찍으면서, 옛날 여자들 풍성한 파마에 불이 난 것을 구경하는, 민들레꽃이 어떤 전기 작은 기계에 의해서 금세 불타는 것 같은 피날레를 연상시킨다.
대충 헐레벌떡 이야기하는 서울말들을 우리는 잘 챙길 수가 있다. 그런 것이 서울말이고, 그것이 일간지의 중요한 칼럼일 것이다.
그러나 내외부가 풍성한, 표면도 아름답고, 내용도 알찬, 그런 것이 되지 못하고,
남의 불륜 이야기로나, 떡을 치는
......
피하지방의 현상 같은
사람들이 백번도 더 봤다는
김영철의 영자의 지방흡입술 인터뷰 같은.......
*
어떤 게임 유튜브의 영상도 있다. 처음에는 인면 뱀에게 쫓기기만 했으나,
그것이 친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둘 다, 다만 에셔의 무한 공간 같은 곳에서,
계단을 오르고, 뛰고, 바닥에는 수영장 물이 차 있는,
그렇게 얼마든지 뛰고, 다시 오르고 하면서
조롱하면서, 그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으나, 친구 하나가,
조금 다른 템포의 것을 만들자,
유튜버는 바닥에 떨어졌고, 넉넉한 삼인칭 전지적 작가시점 같은 목소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 사실을 댓글들이 알려주었다.
목소리가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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