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검은 서예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중일의 차이에 관한 소고.
우리는 루씬, 혹은 뤼순, 혹은 중국의 커피 브랜드, 공부한 만큼 산다. 공부한 만큼, 러브, 스토리, 산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이 바하의 음악을 너무나 연주를 잘하자, 기뻐했던 것도, 여자가 잘 살 것을 정말, 시대적인, 시대사적인, 어쩌면 공관복음서적으로, 진정 기뻐서 그랬을 것이다. 연기는, 인연생기가 아닌, 연기는, 액션은, 그러나, 공부를 하지 않아도, 티비가 우리에게 거대한 정자대왕인 것처럼, 약간, 예쁘고, 잘 생기고, 그렇다 보면, 사는 것처럼 연기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직면한, 한중일 영화의 비교와 같다 하겠다.
먼저 치고 나간 것은 아무래도 일본이었다. 우리는 쟁쟁한, 그리고 빼어난, 기라성 같은 멜로와, 도시풍의 어떤 애환 같은 드라마를 담아냈지만, 일본은 거의 모든 방위에 걸쳐, 애들의 뇌까지도, 뺐다 넣는, 그런 케카이더인지, 하는 것까지 만화로 찍고, 실사로 찍고, 그럴 정도였다. 얼마든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듯한, 신 카멘라이더 같은 것은 정말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죽은 것 같으나, 모퉁이가 살아있고, 전체가 죽은 것 같으나, 모퉁이로도 이어갈 수 있고, 전체가 산 것 같으나, 모퉁이들이 늘, 부분들이 늘, 공부는 하지 않지만, 잘 살고 싶은 열망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불안하지 않지만, 영혼을 점차로 질식시키게 된다. 일본의 시대극은, 진정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지만, 겐지모노가타리, 개그 콘서트 같은 것은, 미학적으로 해내고 싶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 같은 분위기를 엿보인다. 엿장수 마음대로인 것이다. 그것은 희고, 길고, 그리고 팔자니, 인자하고, 넉넉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엿장수가, 탁 하고, 그 부분을 잘라주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그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내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도시에도, 시골에도, 엿장수가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물들을 사기도 했었다. 그래서 돈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모저모 고모 고물들을 가져오면, 그것으로 엿을 내어주었다.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였고, 대동고등학교, 수피아여고 그랬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로 공부하면, 그것도 연극영화학과도 있는 것처럼, 공부가 늘지 않겠는가? 영화로도 법정물도 찍고, 몇조몇항 그렇게 말하는데, 정치영화는 도리어 많고 그렇지 않은가? 마이너스 포인트를 갖고 있는, 생활세계의 블랙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영화를 찍듯이, 아름다운 도서관들을 많이 지었지만, 요지부동인 것이다. 대체, 생활세계의 연극영화적인 마이너스의 블랙홀은 차치하고라도, 무엇이 문제인 것이고, 우리 두뇌에 무엇이 그런 비슷하게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도종환의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타타타. 난들 너를 알겠느냐? 가수 산들 같은 것들이다.
한국은 공부하였는가? 우리는 일본 에이브이의 힘을 빌려, 사랑하는 여배우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할 수 있다.
갑자기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은, 사라진 것 같은, 사하라 사막이 바로 코 앞에 있는 것 같은, 시크릿 가든의 슬픈 너울대는 멜로디를 만나는 것 같다. 어패쇼나타. 우리는 공부하였는가? 중국은. 육이오는 공부하였는가? 얼마 전에는 삼일절이었는데, 기념식의 울분 같은 것만, 그런 아무개 시인의, 그런 것만 있었지 않는가? 영화는 핏빛 내 친구이나, 그것이 공부가 되지 못할 때, 남보다 늦는다고 조롱을 받을 때, 그것의 알갱이가 도리어, 친구가 도리어 우리에게 총살형을 거행하는 일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제법 그럴듯한 수학이고, 표면적인 철학이지만, 그렇다고 심도가 깊은 것도 아니고, 그것을 안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그렇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박목월의 나그네 정도는 되는 것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구름의 입자가, 물 알갱이가, 공중에서 발생하게 되면, 그것이 비가 되어, 한국 영화 강철비가 되어 우리에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부하였는가? 박정희는 어쩌면, 서예를 잘할 것 같은, 서울대 서예학과를 나온 것 같은 다부진 인상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마이클 잭슨도 그렇다. 춤추다가 늘, 자지춤 비슷한 것을 연출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추하고, 추사 김정희 같고 그렇다. 아직 물 알갱이가 발생하기 전에는, 우리는 그런 김구의 문화강국 안에서 행복하게, 신한국적인 모습으로다가, 즐기고, 행복하게, 춤도 추고, 음악회도 열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한국이 무엇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박정희가 약간 일본풍이라는 것도, 우리는 그냥 그렇게 우리에게 엿보이는 것도, 육영수, 영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유신을 했다고 선생들이 말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서예의 코발트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나중에는 참교육. 그것이 진교육.
우리는 다시금, 그 시절의 어떤 풍경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박정희를 일종의 구조주의적으로, 어떻게든 구조할 수가 없다. 분명 좋은 것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골 촌부의 두뇌에는, 서예의 코발트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글을 매우 잘 썼지만, 내가 좋아하는 한 편의 에세이집 말고는, 다른 글들은 거의 이상한 사회학과 논문들만 같다.
박목월의 나그네가, 갑자기 구름처럼, 헬기가 되어서, 오일팔 때, 헬기 사격을 했네 마네 하면, 우리는 갑자기 두뇌가, 일본 애니 케카이더 그런 것처럼, 뇌가 보이는 매우 특별한 로봇이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있지도 않는, 강철비가, 사실을 도용해서, 영화에서 써먹었는지 모른다.
진정 학문에는 수준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아골골짝의 뼈들이, 일어나,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거나, 춤을 추는 것 같은 것일까?
일본은 언제나, 박정희는 자기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 검은 글씨의 코발트는, 아스팔트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정상 작동인 것이다. 드론 일종 실기시험처럼, 시험의 여러 항목 중에 있는, 래퍼 정상수 접근이거나, 강원도 전원주 돌기인 것이다.
전원주가 일어나, 옛날에는 구해줘를 찍다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물난리를 영화 찍었는지 모른다.
수준 있는 학문은, 박정희를 구조적으로도 구하고, 정상수에게서도 가능성을 발견하고, 김다미에게서도, 섹시미를 찾는 것일 수 있다.
일본도 구해주고,
중국도 구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