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유물인가? 운석인가?
중국은 이슬람인가? 무슬림인가?
내가 옛날에 수가성을 지날 때였다. 마을 밖에서 물을 깃던 여인이, 나는 처녀인지 유부녀인지도 몰랐으나, 성경은 내가 그녀가 몇 번 결혼한 것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처녀와 유부녀는 약간 구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유부녀가 몇 번 결혼했는지, 결혼한 전적이 있는 과부인지는 알아맞힐 수가 없다. 다만 불쌍한 마음에, 혹시 과부인가 하는 추측은 있었다. 찰라의 추측. 그것이 전라도라는 이름의 기원일 수 있다. 물을 깃던 여인이, 몇 번 결혼한 적이 있는 과부라는 것을, 추측하는, 찰라의 기적. 같은 것. 그것이 전라도일 수 있다. 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성균관인가? 아니면 유물론인가? 안경점인가? 아니면 수묵화인가? 우리는 장르를 구분할 수 없다. 장르 노. 아무튼 그녀는 내게, 그런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했었다. 내가 불쌍한 마음에, 어째서 이 먼 곳에서 물을 깃는 것인가? 몇 번 결혼한 과부처럼. 그렇게 말한 것이, 심퍼씨, 현균씨, 할 때의, 그런 것처럼. 그것이 그녀에게, 사실로써 접근했다기보다는, 이 사람이 문학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사실들을 토로한 것일 수 있고, 어제 경기 마지막에 김호령이 중견수와 펜스 사이에 떨어지는 공을 잡지 못한 것처럼, 강력한, 아니면 나의 말에 그렇게 맞장구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면, 이슬람 사람들 앞에서는 이슬람이라고 하고, 이슬람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무슬림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허리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는 뚱뚱하고, 슬림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수가성의 여인은, 노래를 그렇게 부르다가, 유림들에게는, 빵빠레니, 딴따라니, 그렇게 놀림을 받고, 멸시천대를 받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배움이 왕성한 사람을 만나, 마치 학생 때처럼, 자기가 이슬람인지, 무슬림인지, 동방정교회인지, 남방정교회인지,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을 얻은 것일 수 있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진정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떠나는, 처음의 완벽함 같은 것일 수 있다.
수가성의 여인은, 남달리 노래를 잘하고 예쁜 구석이 있어서, 어느 부유하고 덕망 있는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남자가 그렇게 유물론적이었다는 것이다. 남자의 성기가, 민중의 지팡이만 했고, 거기서 또 그렇게 들어맞는 말처럼,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이상한 말을 걸그룹처럼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그 말만 하면, 다른 고전적인 말들은 하나도 익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유물이 하나 발견되었다고 하면, 약한 자가 되어서, 하루 저녁에도 가고, 할랄 음식도 먹고, 며칠을 발굴현장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함께 발굴하기도 하고, 발굴할 내용들을 묻기도 했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발굴은, 발굴의 어머니이구나 싶었다. 남자가 경찰에게 걸리고, 수감되었는데, 거기서 불이 나는 바람에 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평범한 남자에게, 두 번째 시집을 갔는데, 과부 재가 금지 안 함 같은 것으로다가, 남자가 평범해도 그렇게 평범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어느 날, 산적들이 그들이 살던 작은 마을에 침입해 들어와, 재물들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였는데, 그녀와 아이들은 광주리를 내려, 벼랑에 있던 집에서 먼저 탈출을 시켰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자도 살아, 재회하였는데, 그 순간, 남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한없이 총명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다시는 없었고, 예전처럼, 하루 먹고 사는 것만 보충하는, 춘천 백이 보충대 사람처럼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몇 번을 결혼했는데, 그때마다 남자가 죽거나, 종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시집의 가문들이 통째로 증발하는 바람에, 자기가 과부인지, 아닌지, 주변 사람들의 지각이 총명하지 못해서, 계속 대학을 다니는 사람처럼, 과를 움직이는 사람처럼, 피규어와 박스를, 마치 그런 성적인 이상한 말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결혼하였는데, 늘 남자가 그랬다는 것이다. 유물론 같았고, 운석론 같았다는 것이다. 옵티무스 프라임. 뭔 말인지 잘 모르는. 모르겠는. 어느 아랍 말 같은. 끝내 진열장에 갇히는.
*
한국 드라마가 그래서, 지금 사탄의 뉘앙스라는 의미에서,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사는 시대에, 아름다운 일급의 문학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뉘앙스를, 고대의 기와 유물처럼, 이것이 웃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그런 것이 있는, 수준이 높지 않아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따져 물을 수 있는 드라마를 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다면 쓰리쿠션 선수처럼, 중국 사람들에게, 당황제가 대단한 정복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인기가 있었던 것처럼, 당황하셨어요? 그런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는 중국 열차처럼, 사탄의 뉘앙스를 쿠션 삼아서, 그것이 인간의 뉘앙스도 되고, 더 나아가서는, 천사의 뉘앙스가 되는 것을, 우리가, 문장이 지금 그냥 흐르는 것도 같은데, 그것을 계산하고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가성의 여인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그래도 위기의 시기에, 자기와 아이들을 광주리로 내려줄 때, 지구를 구하는 운석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배움은 그런, 절정의 유물론일 수 있다. 우리는 대신에, 어려서 배울 때는, 배움이 그처럼, 모든 드라마의 절정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키. 움. 같다. 다. 움. 같다. 모든 과목을 다 배우고, 모든 것의 키를 손에 쥐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상실했다는 기억마저 상실하고 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이십대 초반에서부터, 팔십대, 그리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을 사탄들도 공관복음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배움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쿤밍. 키움. 장래의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어제 김호령이 마지막에 놓쳤던, 관중 펜스와 중견수의 최선의 글러브 사이에 떨어지던 공처럼, 그것을 드러낸다면, 우리에게는 분명히 굉장한 승률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주자학인가? 아니면 이슬람인가?
그와 같이 질문하는 사람 앞에
예수 그리스도가
마치 태평천국운동처럼 나타나는 것처럼......
'클래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마복음과 신형 오토바이 번호판의 길항관계 (1) | 2026.04.24 |
|---|---|
| 변신을 꿈꾸는 고등학교 (1) | 2026.04.23 |
| 난의 허리와 청바지 청년 (2) | 2026.04.05 |
| 역사는 검은 서예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중일의 차이에 관한 소고. (1) | 2026.03.05 |
| 지식과 교양의 사탄적 차이 (1) |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