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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변신을 꿈꾸는 고등학교

by 마음대로다 2026. 4. 23.

변신을 꿈꾸는 고등학교

 

 

 

 

 

 

 

 

우리는 마징가 제트의 전투 구조처럼, 전쟁의 구조처럼, 도대체 어떤 헬조선 박사가, 괴물들을, 괴수 로봇들을, 기계수들을 보내는지 늘 생각한다. 그것들이 이런 말도 하고, 저런 말도 하고 그렇다. 우리가 그것의 중국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것이 진정한 콜룸부스일 수 있다. 그러니까 기계수 전부가 사탄은 아닌 것이다. 왕조현의 리즈 시절을 보면, 왕조현이 어딜 봐서 기계수 같고, 사탄 같은가? 자기가 사랑하면, 기계수를 지나, 사탄은 더더욱 아니고, 사랑의 대상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절정의 여배우들의 미모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늙은 얼굴로 나와서, 지금의 매력 없는 아직 어린것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것들을, 별다른 정치적 의식 없이 바라본다. 유튜브도 그렇다. 조금만 복잡하고, 섬세한 것들을 볼라치면, 도대체 누가 이런 것들을 현균씨 보라고 내보내는지 참담한 실정이 된다. 마음이 된다. 항상 헬조선 박사의 기계수를 내보내는, 어떤 섬을 상상하게 되고, 여수의 섬박람회처럼, 자기가 능력이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별로 경기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금세 접대 야구를 시전하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중국을 상실할 것 같다. 중국도 이제는 그런 것을 보아서, 볼 줄 알아서, 그것이 국익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모든 것들의 제네시스는 대체 어디인가 할 것이다. 밤낮없이 경찰 주인공의, 경찰 국가인가? 아니면, 권력의 나팔수 선생들이, 객관적이답시고 내보내는, 전쟁의 우두머리 잘생긴 사진 같은 것인가? 왕조현이 예쁜 것과, 천녀유혼이 그렇게, 그것의 음악이 그렇게 예술적이었던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권력의 나팔수 선생들이, 세계사, 현대사, 그런 것을 내보낸다고, 우두머리 잘생긴 얼굴을 내보내는 것과 같은 선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큐를 보면, 같은 사람 얼굴을 열 번을, 열 번 넘게를 보기도 한다. 이야기보다도, 그냥, 사람 얼굴이, 하나, 딱 하나, 나를 쳐다보는, 그런 이상한 훈련을, 에프비아이가 시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현균씨 보라고 내보내는 것들의 꾸러미를 보면, 그런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또한 콜룸부스, 콜롬비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씨엔엔이나, 에이비씨, 씨비에스 같은 것들이, 옛날의 그 묘한 종교적이고 국가적인,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우월의식을 갖고, 세상을 연민하면서, 뉴스 방송하던 것들을 이어갔다면, 우리들도, 방송국이 몰락하지 않고, 제목에 그런 것이 있는데, 무슨 권한대행, 한 사람만 살아남아서, 그가 권력의 전부를 갖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와 유튜브만 있다. 다른 것들은 볼 것들이 없다. 일본 지금 방송들을 보면, 약간, 우리들의 절정의 시기의 포맷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먼저 다채로운 것들을 가졌고, 우리가 그것들을 표절하고, 총기 수입하고, 개선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연예인들이 골탕을 먹는, 그 옛날, 우리들의 잠실 구장 같은, 이홍렬의 참참참 같은, 한방의 연예 티비, 그런 것 같은, 조금씩 벗는 연기를 내비치는, 풍요로운 동방의 타고르 불빛이 되는 것 같던,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우리가 가졌던 높이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들을 실질적으로 각종 연예인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기차가 지나는 건널목에서, 맞은 편에서, 방송 제작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기차가 지나는 틈을 타서, 옆으로 가라앉은 도로로 달리고, 거기서 차를 타고 도망하는 것. 그리고 머리가 없는 어떤 남자가, 여자들과 술을 마시다가, 집에 가서 잠이 들었는데, 모든 가제 도구들을, 몇 개 없는, 참담한, 여자 왕조현 같은, 슬픈 현실, 거의 그대로 섬에 가져가서, 거기서 눈을 뜨게 하는 작전 같은 것. 그것은 왕과 나든지, 나와 너든지, 방송과 연예인이든지, 너무 전쟁이 난 것 같은 충격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앞의 세 개는 우리가, 우리가 저녁을 즐기는 간접적인 것들이지만, 아무리 배우들이나, 작가들이나, 방송 제작자들은 항상 무거운 매질을 이고 산다고 해도, 아무리 우리 눈에는 그런 것들의 연속이라고 하나, 아침에 숙취에 일어났는데, 섬에서 깨어 일어난 것 같은, 문을 열었더니, 섬의 해변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이전 것과는 다르게, 종교적 충격의 알파에 이르지 않는다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 살면서, 연예인들을 만나고, 뒤늦게 왕조현도 만나는, 그런 서울 잠실의 삶을 살았다면, 밤실의 삶을 살았다면, 그런 활달한 방송의 분위기에다가, 생산적이고, 정신적인 다큐의 성장까지도,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주도의 알파까지도, 대학이 아니라 방송이 가질 수 있었겠는가? 나는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심인 것인가?

 

미국이 자기의 힘과, 아름다움을 잃고 나자, 나와 유튜브의 연대에 걸쳐, 자기 중심성이 없던 한국은, 쇄국정책이 아니라, 쇠국의 실정에 도달하고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상상은 이것이다.

 

중심은 서로 싸우고 있는데, 한국 방송이 또한 중심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아직도, 증심사 정도의 느낌은 있다.

 

 

*

 

 

선하고 착한, 막대한 영혼의 젊은 고등학생들이, 세계 연예인들, 축구인들, 정치인들처럼, 변신하기 위한, 각종 실험과, 밀실, 코난, 살인, 각종 전기에 몸이 타는 냄새, 그것이 새로운 음악 중심이라는 것이다. 헬조선의 박사가, 여수의 섬박람회의 섬에서, 공룡들을, 공룡의 발자국들을, 기계수들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선명한 변신 귀족들을 향한 의식이, 자기들의 재산과, 과학, 고문들, 옛날 문건들, 그리고 실제 고문들, 그리고 성의 해방 신학 같은 것들을 갖고 살면서, 죽는 이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중심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는 간사도 있고, 한국 영화 간신도 있고, 한국 영화 깐부도 있다. 그나마 간사가 제일 나으나, 우리가 간사한 것들, 그렇게 욕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박력이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런 젊은것들은, 세계에 파견되어서, 각종 연동 현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침묵하고, 그래서 그들의 중심과 같은 세포가 되고, 그들의 사회 생물학의 뇌가 없는 지체가 되는 것이다.

 

 

 

변신 고등학교에서는 죽는 사람들만, 죽어서만 나오지만, 우리가 티비에서는 변신하는 것들만 보는 모순들......

 

 

그것의 케이티 다미 통일교적인 지평 융합이 과연 있었을까? 

 

 

 

백 명이 찜기에 들어갔는데, 죽고, 원래 변신하는 것들이 태평양 섬에 여행 갔다가 섞였는데,

 

 

 

난마돌처럼

 

더 노랗게 되거나,

 

백인이 되어 

 

허리케인 속에서도,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