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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도마복음과 신형 오토바이 번호판의 길항관계

by 마음대로다 2026. 4. 24.

도마복음과 신형 오토바이 번호판의 길항관계

 

 

 

 

 

 

 

 

 

 

기독교 정통주의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전통주. 혹은 다른 전통. 그것은 이단이 먹고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했다 하면 돈을 버는 것처럼. 그것이 다른 지능을 만날 수는 없는 일이고, 다시금 돈을 잃고, 이번에는 시리아, 이라크, 몸이 언제나 아픈 것 같은 아프가니스탄, 그런 것들과 전쟁하다가 돈을 벌 것이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상한 말이나, 화목제, 그런 이상한 말이나 목사가, 사람들에게 성수를 뿌리듯이, 지껄이고,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화목제, 매주 이상한 성가나 부르면, 공중에서 탕수육이라도 내려오겠나 싶다. 옆에서 우리가 같은 과인 것 같으니, 함께 지내자고, 이세벨이 다가오지 않겠는가? 바알과 바울은 진정, 울바의 차이밖에 없다. 이단과 싸우는 것이 도덕적 우위에 있지 않고, 그냥 싸우며, 이단끼리 싸우는 것 같이 싸우며, 바울의 서신을 내용 깊이, 땅끝까지 추적하여 읽지 않는데, 영감으로 남에게서 왔다가, 영감으로 남에게 가는 것을 늘 그렇게, 대추에 사랑나무 걸렸네,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나중에는 그렇게 이벤트 호라이즌호처럼, 통일교로 융합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 모든 말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신천지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첨지. 신첨지. 김천 국밥. 그리고 신천지. 우리는 기독교가 이렇게 도마복음과 신형 오토바이 번호판의 길항관계에 빨리 도달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냥 어제는 기독교인이었다가, 오늘은 도마복음의 이단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은 잘 지어진 현대식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고속 승진하여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공포 영화를 보는가? 학폭 이슈도 어쩌면, 그렇게 혼자 지낼 때는 공포 영화를 보다가, 가족이랍시고 생긴 이유에서, 오직 양육과 교육에만 골몰하는 젊은 부부가 얄미워서, 사탄이건 태공조건, 그렇게 맹목적인 중간 섬을 만든 것일 수 있다. 내가 뭐라고 말하면, 단번에 물리치기가 힘이 든다. 어렵게 결혼하고, 부부를 이뤘어도, 둘이 함께 공포 영화를 보게 되면, 당연히 어떤 현상이 발견되겠는가? 공포 영화가 그들에게, 공중에서 나타난 것 같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학폭이 공포 영화처럼 날아들지 않겠는가?

 

지각이 있는 서울 사람들이, 총신대나, 장신대 몇몇이 도마복음을 읽기 시작했다. 한신대도 그럴 수 있으나, 나는 읽을 책이 그런 것으로는 싫었다. 뭔가 진짜 이단으로 똘똘 뭉친 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유튜브로 보니까, 모든 정경에 들지 못한 책들에 대한 설명이, 도마복음과 신형 오토바이 번호판의 길항관계를 잘 설정하도록 도와주는 듯했다. 경찰들도 하지 않고, 경찰들은 경주 첨성대처럼 지능이 없는 관계로, 공포 영화와 아이들의 교육의 중간 섬을 만드는 집단에 속한 것처럼, 그렇게 이제는 인이 박힌 것처럼, 몇몇 젊은 청년들이, 유튜버들이, 현균씨 보라고, 관심의 카테고리를 분석하고, 혐오 같은 것이 있는 것을 이제는 알아서, 잘 아무튼 설명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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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이 성경을 읽었는데, 같은 도마복음 같은 책들을, 새롭게 조정하고, 편집하고, 정리하고, 종합한 것 같은 책을 어째서 쓰지 못하는 것인가? 이단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과 시간이, 애초에 차단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는 반성하게 된다. 복음성가만, 복음성가만, 그렇게 새벽 밤낮없이 부르고자 하는 심보가 엿보인다. 복음성가를 진정 최선을 다해 부르면, 성적인 응어리가, 마치 수술 중에 의사들이 꺼내는 것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영감에 휩싸여, 새로운 복음서를 쓴다고 해도, 기성 교회 목사들은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남의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지식을 갖고 있어서, 나타나는 섬진강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쁜데 이름이 보지인, 어떤 한국 현명한, 한나 같은 여자가 가져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자지도 없고, 보지도 없는가? 독일의 재세례파 운동이라는 것도, 남의 나라이고, 역사이나, 모른 척하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다. 포스트맨은 벨을 세 번 울리는 것처럼, 적어도 남자라면, 축자영감설처럼, 자기가 그렇게, 한 번 나오고, 두 번은 나와야, 남자이고, 인생인 것이다. 여자도 백번 김구. 백번, 우리 인생이 유럽의 누드 비치도 아니지만, 그렇게 보여주어야, 여자의 참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먹기는 매운 김치를 먹고, 비비기는 참기름으로 비비지만, 항상 보면, 기독교 정통주의를 고집하고, 복음성가만 부르다가, 이단에게 지배 경제 권력을 넘겨주는, 한길사 로로로, 단 하나의 운명을 사는 것 같다.

 

 

불쌍한 우리나라......

 

개고기 개독......

 

부처님 개불 산단......

 

바닷가 새벽 개불들을 모아다가

 

교육이랍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