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라는 말의 어려운 점과, 한국어의 슬픈 이벤트 호라이즌......
조선시대에는 과연 개인이 없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철학은 게르만이 아니라, 개르만이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간이 개가 되었다가, 개과천선, 누군가 대학의 개과에 천선해서 들어온 것을 말하는데, 그럴 확률은 있지만, 진도군수, 진도희,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완전히 갑의 횡포, 갑각류가 되어서, 다시 인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개는 인간에게 가깝다. 개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개가 많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인간이 키우는 개. 목줄을 해야 한다는 법률적 발상도, 어쩌면 사탄의 목줄에서부터 목소리의 물방울이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진정 휴민트 같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이, 그와 같은 질서가,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개를 만나면, 우리는 미학적으로 급격히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못 먹는 한이 있어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 것 같은 것이다. 성경 말씀처럼, 하늘을 나는 개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개인을 두고, 언제부터 개인이라고 불렀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근이라도 흥미롭고, 아주 오랜 옛날, 게르만족이 있기 전부터 그랬다고 하면, 그것도 매우 흥미롭다. 일본에 아스카 문명이라고 있지 않은가? 야요이 문명도 있고. 우리나라에는 최근에, 스카, 스카페이스 카페, 아스카 문명은 아닌, 스터디 카페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카공족도 그렇다. 어떻게도 개라는 단어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들이 연관을 지어서, 개라는 말을 떨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냥, 개라는 말에서, 열 개라는 한자에서, 볼 견이라는 한자에서, 큰 대라는 한자에서, 개성이라는 천년 고도에서, 고독한 천년의 도시에서, 개를 상정하고, 심상정,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철학이 없어도 되었던 것은, 우리가 그처럼 과거에서부터, 미래에, 위대한 개인, 위대한 게츠비가 나타날 것을 소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의 한때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배우만 하다가, 공부는 안하고, 갑자기 술을 삼일 정도 친구들과 마셨더니, 지능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사람들도 못 알아보고, 억지춘향적인 예의나, 아름다운 목소리, 쥐어짜는 듯한 친근한 포카 페이스에서 벗어나, 소에게 망태기를 씌우는 것처럼, 개에게 목줄을 하지 않는, 견자, 그러니까 진짜 개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개인이 나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모른다. 거북선도, 실은 그런 미래적인 한국 철학적인 소망, 미륵불적인 개북선이었을 수 있다. 우리가 지능이 떨어져도, 한국어의 그 금모래빛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철권의 프레임을, 그런 것이 있다는데, 마치 개북선처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는 지금 이와 같은 글도, 이순신 장군이, 철학적인 글을 쓰고자 하였으나, 겨우 사서삼경이나 맴돌고, 허구한 날, 말이나 타고, 활이나 쏘고, 술이나 마시다가, 한국군의 총탄에, 금강불괴의 옷을 지금 진도군수의 얼굴로, 자기가 시험해 보겠다고, 극구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기생들이 서너 명이 앞에 보여서, 존재의 자기 과시를 하다가 그만.......
지나온 추억이, 광양의 중마동처럼 흐르고, 뭔가 창피하고......
개천절의 개처럼 하늘을 오르자니, 단군 할아버지께 부끄러워, 죽은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을 수 있다.
.......
자연은 살아있다는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는데,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도, 살아있을 때 그렇게 즐겨 봤다는데, 그것들 모두가, 우리가 개에게 너무 의존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누비스......
아누나키......
죽으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사람들이 지금껏 뜻을 알 수 없었던......
세비앙.....
누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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