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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아름다운 고추양념간장 같은 한국어

by 마음대로다 2026. 5. 15.

아름다운 고추양념간장 같은 한국어

 

 

 

 

 

 

 

우리 사는 세상에서, 데모크리투스 같은 착상은 어쩌면 쉬운 것이다. 인연생기. 그런 연기론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어느새 태어나서, 산속의 굴뚝의 연기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 연기들이 모여서, 사람처럼 보이고, 정말 사람 같고, 사람말까지 하고, 일하기에 힘쓰고, 배우기에도 힘쓰는 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가, 화엄사 햄버거도 먹을 수 있다. 코난 음식이기 때문에, 스님들도 시켜 먹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다. 여행적인 자유와 언어적인 끕끕함. 비행기에서는 여자 승무원이, 중국 여자 승무원이, 신사숙녀여러분, 그런 말을 원세원세원원세 그런 비슷한 말로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장난이 아닌 것이고, 그런데 우리 귀에는, 내 귀에 캔디, 너무나 장난스럽게만 들린다. 백 퍼센트 한국어이지만, 백퍼센트 한국어적 의미가 아닌. 내 귀에 사탄만은 아닌 것의 만족 같은. 그런 메시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실망이다. 사람이 살면서, 살다가 살다가, 내 친구가 죽을 때, 사는 것의 기쁨을 마음껏 느끼고, 어거스탄 피리어드를 만끽하고, 남들에게도 주고, 남들에게서 받고, 그렇게 지내야 하는데, 겨우 사탄만은 아닌 것의 만족으로만, 같은 태양 아래서, 비슷한 자연 아래서 살 수가 있는 것인가? 지커만. 주커만.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쩌면 백 퍼센트 영어이지만, 또한 백퍼센트 독일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내 일 년 후배가, 날씬한 데가 있었다. 목소리도, 여객기 엔진소리처럼, 카랑카랑하였다. 뭔지 모르게, 수사학적인 날렵함도 있었다. 나는 모든 여대생의 꿈. 그렇게 지커만 주커만 말을 했는데, 스튜어디스, 너무나 선명하게, 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순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양념간장의 고춧가루 같은 것이 되었다. 신학생이 문학을 하기도 힘들고, 이름은 여호와, 여호수아, 여수, 그러면서, 실상은 그렇지 않고, 멜로 드라마는 더 어렵고, 그것의 구체적인 진입은 상상을 할 수도 없고, 그것의 톤까지도, 약간 청소년틱한 대학교 드라마 같은 것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그것은 신학을, 같은 양념간장의 고춧가루처럼, 그것의 적당한 통으로 갖고 있는, 서울 소재의 지적인 대학교 학과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신성일 엄앵란, 김춘삼 신영균, 모두 실패한 것은, 하희라, 김희라, 모두 실패한 것은, 학교가 없음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패한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었다.

 

우리가 죽기 전에, 혹은 수술에 앞서, 마취를 받을 때, 온 몸이 마취가 될 때, 나는 거센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그것은 나만 시험인 줄 몰랐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수원에서 영화 보고 왔는데, 실천신학, 예를 들면 설교학 개론 시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에 합동적인 이유는 없었다. 나만의 침묵. 나만의 사랑. 나만의 슬픔인 것이다. 윤상도 부르고, 아이유가 불렀던, 나만 몰랐던 이야기. 그런 비슷한 느낌....

 

우리는 보상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영화가, 시험이나, 성적보다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냥 미국 액션 영화였을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피눈물 나게 영화를 찍어놓고, 음악들을 만들어 놓고, 한 명 비평가가, 철학자가 나오지 않는 나라의 비애 같은. 슈퍼맨의 비애 같은. 그것을 기숙사의 방에 들어가서,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쳐다볼 것인가? 그냥 경기서적에서 책이나 보다가,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변명의 보상심리적 언변을 구사하고자 하나, 그냥 영화보고 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어떠한 구체성도 갖지 못한다. 인연생기처럼, 갑자기, 하늘이, 세상이 하얗게 되는, 극한의 흰 가루 같은. 죽음의 충격이나, 신체손상, 장기 손상, 뇌손상으로 사람이 죽는 것도 있겠지만, 존재가 정말 관념적으로, 오직 데모크리투스적으로, 무한한 입자와 알갱이로, 흙바람이 일 듯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목을 포기하지 않고,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면, 어느 책의 레포트로 대신할 수 있지만, 그것의 최고점수가 시험 점수의 반절 이상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아이는 무더기로 시험을 거절하기도 한다. 어째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신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매사에 강력하였다. 내가 신학 영어 중간 고사에서, 가장 먼저 문장들을 번역하고 나가자, 기말고사에서는 나보다 세 사람 먼저 시험을 끝내고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눈으로 읽으면서, 한글로 쓰는 것이, 타석의 타자처럼, 완벽하게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신비로운 존재가, 그것을 행하면서 기쁨이 있었는데, 친구인 전근영, 그리고 어떤 몇 명이 더, 그러는 것을 보고, 사실은 믿기지가 않았다. 신학과는, 일반적인 능력은 기본적으로 세이브하고, 오직 신학만을 위해 모인 독특한 힘의 입자가 있어서, 아무튼 그 친구들이 그렇게 영어 실력이 대단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높은 산의 산양 같던지, 내가 그들에게 산양 같던지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옛날 영화들의 고추간장양념에다가, 비가 내리는 옛날 필름에다가, 내 고등학생 여자 친구가, 적반증이 걸렸었다고, 내게 하소연할 때. 지금 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시절에는, 섹스가 대추나무 걸렸기 때문에, 다만 이야기만 나누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말도,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 말도, 그렇게 기억이 난다. 학교냐 좀비냐. 로키 시리즈의 시합은 그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 내가 좀비가 될 수 없다는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 영화가, 헐크 호건이, 좀비가 될 수 없다는. 가혹한 노력 같은 것. 죽음 같은 것. 학교도 다니고, 전근영처럼 성적도 좋고, 그래도 우리는 수학적으로 좀비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진짜 좀비인지, 가짜 좀비인지 모르는 것들이, 지붕을 걷어내고, 벽들이 무너지는.....

 

만두를 한국어의 고추양념간장에 찍어먹는......

 

아주 잠깐 붉은 글씨의 옛날 중국 영화가.......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좀비가 있다는 것인지

 

우리가 진실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좀비가 있다는 것인지

 

우리가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이, 적어도 창원 시향 사람들은 좀비가 아니라는 것인지

 

 

선생이 마지막 선생 드라마를 끝으로

 

좀비가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