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은 과연 우울한 사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평단의 주된 입장이지만, 지상만가이지만, 그런 것으로 잡히는 우연한 실마리를 측정하여, 생각을 시작하고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리산을 돌 때, 그 굴곡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더 찬양할 수 없을 때, 오직 오토바이만 굴곡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프로야구의 성격도 나름 성격을 갖고 굴곡을 갖는 것처럼 여겨질 수가 있는 것 같다. 누구도 미국 야구와 일본 야구, 신생 대만 야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미니카. 쿠바. 이야기하지 않는다. 왕조의 탄생. 다큐멘터리에서 잘 용접사의 티그 불꽃이 된 것처럼, 헤겔의 절대적인이라는 말이, 일차적으로는 전반적인, 포괄적인, 사회 관계적인 의미를 포괄하고 있듯이, 프로야구와 다큐멘타리의 절대정신이 거기서 잘 묘사된 것도 같다. 그러니 세계는 오직 해태 타이거즈만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시대 정신에 도달하게 된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해태 타이거즈는 각종 문의사항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등경기장 근처에는, 문희수 투수의 집이 있기도 하다. 문희상이라는 정치인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여배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이 어째서 지금 우리에게는, 단단한 파이프의 건실함으로, 우리에게 우울함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빅풋을 관심하지 않는 지금의 시대에, 야구 선수들이 얼마나 어려운 존재의 싸움을 하고 있는지, 디스커버리 채널, 우리는 모두 디스커버리하고 있다. 우승의 역량을 가진 팀이라고 해서 하나도 다르지 않고, 절대적인 차원으로부터의 수많은 멍을 가진 이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삼성이 두 번 연속 역전 만루포의 희생양이 된 것과, 양들의 침묵, 기아가 연거푸 서울에서 공부 못하는 영원한 우리들의 지방 유학생들처럼, 대학이라고 하면 그런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데, 두드러지게, 대학에서도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여름 그늘을 보여준 것처럼, 그것은 결코 우리가 사소하게 여길 것이 아닌 것이다. 현재를 놓치고, 해태 타이거즈 왕조의 탄생을 본다는 것은, 그래서, 뜻밖의 일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가 있어서, 앞으로 삼 개월 살 사람이 있는데, 일년 치의 과제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우울해지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사탄이 청주나 광주, 울산이나 마산이 되지 않고, 어째서 서울이 되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사탄이 힘이 세고, 사탄이 어렵게 어렵게 공부하는 나이 어린 자기들의 아들 딸들보다 항상 똑똑한가?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 사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춘천 사람이 되고, 춘천 가는 기차, 인천, 오목교, 조치원, 평택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내가 서울 살 때, 한 명 서울 사람 같은 이를 본 적이 없다. 지식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키를 가졌으나, 지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내게 잘 익은 벼처럼 겸손하였다. 사탄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항상 키가 큰 척 하였으나, 사탄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앞에서 모든 것을 의뢰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어렵고 슬픈 사람이 되었다. 내 친구가 한양 공대를 다니다가, 그도 그처럼 그 사람들의 인구를 알았던 것인지, 변리사 시험을 보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하였다. 나와의 관계. 그것이 바로 신학이다. 용접사의 과제로서의 신학이다. 그리고 문제는, 사탄은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마다 볼 수 있고, 달마다 볼 수 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신정론을 배울 때 유쾌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서울에서, 좋은 어느 빌라에서, 아침에 토마토 주스를 마시다가 보면, 잘 설명한 것이 눈에 띈다. 그것의 전문적인 오랫동안 습관적인 일방적인 말솜씨와, 내가 그것을 알아듣는 것으로서의 즉흥성, 자연성, 마티스 같은 야수파, 그런 것들의 대결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의 수하의 장수였던 배설은, 일종의 신학적 교학자였던 것이다. 항상 신정론처럼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사탄은 과연 똑똑한가 였다. 똑똑하다면 얼마나 똑똑한가였다. 우리가 신정론으로써 서울이나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본다면, 별로 볼 것이 따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정신 같은 사탄의 관점에서 본다면, 드디어 우울한 우리들의 서울 사람들의 루시엥 골드만의 숨은 신 같은 숨은 하루와, 왕조의 탄생 해태 타이거즈 다큐멘타리가 눈에 띈다 하겠다.
과연 그 시절, 야구장 그물을 잡아 흔들고, 거기에 오르고, 욕하고, 불 태우고 했던 이들이, 그 열정으로 영화에 캐스팅되어서, 일을 하게 된다면, 제작도 잘하고, 시도 잘 쓰고, 시나리오도, 시카리오도, 잘 썼겠는가?
우리는 그런 상상이 반갑고, 만화 같고 그래서, 그들이 잘하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영화가, 늘 사탄에 질식하여, 알아서 기는, 행동이나, 말투, 이건열이라는 타자도 있었는데, 어떤 저열한 흐름만을 갖는다면, 그렇게 내보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다시 취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는 것이다.
아주 고대에, 고대의 상징 호랑이, 그처럼 절대정신을 이웃으로 삼고 있다가, 다만 우승에 안주하고 사라진 왕국이 있었던 것일까? 왕조가 탄생하여, 사라진 때가 있었을까? 없었다고 한다면, 성급한 우리들의 스토리를 과거에 덮어 씌우기의 오류이겠지만, 있었다고 한다면, 다시금 사탄이 얼마나 똑똑한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똑똑한지, 우리는 확진 판정을 내릴 수는 없으나, 마냥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접사의 용접은
눈물 같다.
그리고 한국 영화는 해태 타이거즈처럼, 내가 양산리 자취방에서, 겨울에, 수퍼에 가서, 뭘 사려는데, 장갑 끼고 야구하던 사람들처럼, 높은 곳의 티비에서, 그렇게 사라지는 티비엠 같은 것이었을까?
중국의 고대에, 사탄이 늘 똑똑한 시절과 시대 그리고 레전드의 시공간에서, 거인 치우가 머리가 잘린 채로 삼십 년이나 싸웠다는데, 프로야구를 보면, 비록 사탄이 똑똑할지라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의 두 눈으로 실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치우 같고, 기아 타이거즈는 그나마 쥐젖 같은 머리가 있는 것을, 최신형 휴대폰으로 망원 촬영을 하면, 보이는......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이와 같은 가혹한 시학에 있어서, 가혹함에 있지 않고, 시학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교육을 좋아한다.
사탄은 멀쩡한 인간들을 휴지 취급하여, 사람들을 놀래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들을 동시에 가르치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들의 교육은, 육체는 오직 체육만 있고, 철학을 너무 배우기 어려워하면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있다.
그것은 우리들 철학과의 숨은 현주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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