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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중국적 욥기와 일본적 축기

by 마음대로다 2026. 6. 21.

중국적 욥기와 일본적 축기

 

 

 

 

 

 

 

 

 

 

대국굴기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대불산단이나, 대림 어떤 옛 창고나 공장을 카페로 변형하여 운영하는, 최신식의, 중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패션 아이템이 있는 곳을 지나다가, 중국에서 찬 공이, 미국 영화, 어떤 미국 영화처럼, 바다를 건너, 인천을 지나, 대림동이나, 그런 곳까지 온 것으로도 상상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근대정신이란, 비사감과 러브레터처럼, 사람이 공룡이 된 것이 전부였으나, 아니면 박근혜가 되지 않는, 불꽃같은 투지, 창원 다이노스, 그렇다고 너무 아무것도 없는 전시장을 돌아본다는 것은, 변신하여 빠지는 권력자가, 경찰에게 두둑한 돈을 주어서, 그 돈으로 어렸을 때 쇼와 시대 장난감을 사 모았다는 사연의 전시장보다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더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말이나 뱅글뱅글 돈다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 나미의 빙글빙글 같은 노래나, 죽을 날짜가 얼마 되지 않는 민족에게,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 뭔가 아직도 전진하고, 발전하고, 경제 발전 오개년 계획처럼, 오개년이라는 어떤 만화가가 있는 것처럼, 오천년은 중국 여배우 이름, 그런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우리에게는 늘 있다. 신일선풍기처럼 있다. 물 걱정을 하지 마세요. 하청일처럼 있다. 그러나 발전이 없고, 다만 몰몬 타버나클 합창단처럼, 우리의 허리띠 버클. 내용 없는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처럼, 다만 기세나 혐한, 협치, 그런 것만 남은 우리들의 마지막.....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과, 대운동장에서, 그렇게 엑스로 모인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뭔 소린지, 아주 미세하게나마, 우리들이 취직할 때, 신체검사를 할 때, 청력 측정도 하는 것처럼, 아주 미세하게나마, 무슨 소리도 없는 채로 손을 드는, 자꾸 들어서, 여자 검사관이, 소리도 안 나는데, 자꾸 손을 들지 마세요 그러던 안타까움, 둘 중에 한 명이 진정 장난이었으면 하는, 그것도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나는 진정 여자를 좋아하였으나, 마음에 드는 예쁜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내가 중학생 신분이었어도, 결혼할 용의가 있는, 그런 공유의 용의자였으나, 나는 성리학적으로 또한 공부의 이방원이 너무 넓어서, 그와 같은 사랑 사태에, 지고이네르바이젠,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범룡이. 아무튼, 어떤 할아버지가, 초로의 아저씨가,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자꾸 손을 드는 모양이었다.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든 장치의 버튼을 누르는 모양이었다. 그 미세한 소리가 지금 생각하면, 마치 강변의 모래사장처럼, 새소리가 분명 들린 것 같은데, 쳐다보는 것 같은 심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저씨는 심적 안정감도 없었는데, 그렇게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 자기 배에 주사기를 찔렀던 것일 수도 있다. 성리학적으로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어떤 여배우가, 유지인이, 그리고 에스이에스의 유진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성미향이, 김정화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옆에서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티비에서 보던 최수지가, 이미연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 옆에서 객관적으로, 티비와 공중파, 그것의 무선 통신적, 하버마스적, 하이마스적, 메타버스적, 고민에 그나마 측정적 참여를 하고 있는 사람조차, 그와 같은 시청자를 더 이상 편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냥 어떤 할아버지가, 지금은 나와 같은, 비슷한 연배에 걸쳐 아직 살고 있는데, 지금은 매우 젊은 모습인데, 젊었을 때, 이상하게 그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면, 신체 검사장에 모인 사람들이, 처음에는 앙드레 가뇽의 소프트한 음악처럼, 호기심도 갖다가, 짜증도 나다가, 이내 너무 우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연들은 그럴 착각이 분명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이산가족은 찾지 않으니, 지금 보면 그때 가족들이 너무 비슷했던 것도, 이상한 느낌인 것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혈액형 검사에서, 가족력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나와도, 한번 그런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얼굴이 무척 다르게 생겼으나, 달리 보면 너무 똑같게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예쁜 둘째 누나를 사랑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은, 달리 보면  어린 내 얼굴과 너무 똑같게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밤낮으로, 내 얼굴을 갖고, 세수하지 않고, 잠자고, 코딱지 파고, 그랬던 것을 좋아하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미학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내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오면, 잠깐 예뻐보였었다.

 

축구에서 오직 골키퍼에게만 그것은 잡기가 된다. 야구는 배트도 잡기이고, 투수도 잡기이며, 야수들도 모두 잡기이다. 공을 발로 차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강습 타구가 투수의 발에 맞는 경우는 아주 몇 번 있다. 그리고 루상의 주자가 진루를 위해 달리다가, 그러다가, 빠른 타구에 도리어 피하다가 발에 맞는,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배구처럼, 발로 리시브를 하고, 토스를 하고, 상대편에게 넘겨주는, 그런 심각한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공이 멈춰있고, 맹렬하게 돌고 있고, 삼루에서 주자가 달려들고 있는데, 손보다 발이 먼저 있다고 해서, 법보다 주먹이 먼저 있다고 해서, 그런 방화들, 축제들, 한국 영화들, 죽이기들, 살리기들, 죽였다 살리기들, 혹은 발로 차, 그런 것처럼, 발로 차서, 포수가 그것을 캐치하고, 삼루 주자가 뒤늦게 홈에 손을 대는 경우는, 아웃,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경우는 세잎, 그런 광경은 본적이 없다.

 

밀레니엄에 걸쳐, 상해임시정부가 팜므파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국어사전의 수준에서, 사람들의 모든 일심의 직업들이, 잡기가 되고, 욥기가 되어서, 욥의 아들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그의 팔다리가 모두 잘리는 것을 걱정하는 무리가 과연 있었을까? 축구도 그와 같은 극악의 정신병을 상정하는 스포츠였을까? 다들 팔다리가 필요하나, 축구는 오직 골기퍼만 잡기가 허용이 되는 것을 보다 보면, 그런 상상을 회피할 수가 없다.

 

 

대국굴기라는 말은,

 

그런 상해임시정부의 전시장 같은 곳을 돌다가,

 

굴만 만들 줄 아는 인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아득한 때의 내면을

 

더 이상 기억할 수가 없다.

 

 

성경은, 매우 아름답다. 불경은 불경스럽지는 않으나, 팔만경으로 만들어도, 만한쭈엔시, 읽을 만한 것이 없다.

 

 

*

 

태국 사람 중에 한 명이, 그의 선선하고 아름다운, 넓은 공간에서, 성경을 읽고, 말하고, 터득하고, 그가 가르치는 것을, 글로도 쓸 수 있고, 말에 여유가 넘치고, 기독교적 잡기를 마침내 넘어선다고 하면, 선달, 혹은 선다이알, 자칫하면, 미얀마 바간, 한국의 기독교 백 년 역사도, 어느 인도네시아 전도 대회처럼,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사라지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꽃 피울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박근혜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웃고......